생각의 숲

스타트업에게 투자는 반드시 필요할까?

잠자는보노보노 2025. 1. 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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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그 동안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일거리가 계속 늘어나서 일하는 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네요.

보통 첫째가 어린이집 가있는 낮 시간과 애들을 재운 늦은 밤부터 새벽 시간을 많이 활용하는데

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다보니 피로가 누적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도 작년 수입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유효했던지 아무 준비없이 창업을 했음에도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만큼의 수익은 확보했습니다.

물론 4대보험과 복리후생비를 생각하면 실질적인 소득은 마이너스겠지만 첫 시작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2025년의 첫 글감은 '투자' 입니다.

정확히는 최근 정부와 민간에서 창업생태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정적인 늬앙스의 글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을 쓰는 일기장 같은 곳이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도발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군요.

 

요즘 인터넷 뉴스를 보면 헤드라인에 '어떤 기업이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더라', '어떤 기업이 몇천억에 M&A에 성공했다더라', '어디 투자사가 모태펀드를 받았다더라' 같은 뉴스들이 끝 없이 올라옵니다.

물론 관심사가 관심사인지라 맞춤형 뉴스를 제공받는거겠지만 그럼에도 과하게 넘쳐납니다.

극히 최근에는 정부의 창업지원예산을 대폭 줄이고, 민간 투자사의 투자에 매칭시키는 방향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에세이도 보았습니다.

정부에서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하는 시그니처 지원사업 '예비창업패키지'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였습니다.

EXIT까지 경험하신 분께서 본인의 경험을 꺼내면서 하신 말씀인 만큼 설득력도 있었고 일견 수긍할 만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실제로도 올해 정부의 패키지 지원사업의 총예산은 대폭 줄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스타트업은 반드시 투자를 받아야만 하는 걸까요?

 

작년에 만났던 대표님들 또는 예비창업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정부사업은 투자 안받으면 선정되기 힘들다던데요?"

"우리 아이템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M&A로 빠르게 EXIT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창업생태계의 역사가 깊어지는 만큼 (예비)창업자들의 역량 역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스타트업 문화는 창업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놨죠.

2000년대의 벤처기업과 달리 스타트업들은 로켓 성장을 내세웁니다.

꾸준한 매출액으로 규모를 늘려나가기 보다 규모를 먼저 갖추고 규모를 통해 매출을 늘리는 방향으로요.

물론 굉장히 유효하고 효율적인 전략입니다.

사람의 창의력이란 대게 비슷비슷해서 내가 생각한 획기적인 아이템은 이미 어디선가 사업화가 되고 있죠.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방법은 기존의 아이디어에 약간의 개량(또는 변형)을 거쳐 빠르게 시장에 진입한 다음, 막대한 투자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 바로 민간에 의한 투자 입니다.

100억, 1,000억 같이 가늠도 되지 않는 막대한 규모의 자본이 기업에 흘러 들어가게 되고, 이 돈으로 기업은 공장도 짓고 사람도 고용합니다.

 

그런데,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민간의 투자는 대부분 펀드의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수백억원을 자신의 지갑에서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때문에 투자사(GP)들이 총대를 매고 기관, 개인, 기업들(LP)로부터 돈을 모으는데 이를 펀드라고 합니다.

여기에 투자한 기관, 개인, 기업들은 최대한 빨리, 투자금 이상의 수익을 거두길 원하죠.

그래서 모든 펀드는 시한부입니다. 대부분의 펀드는 길어봐야 10년을 넘지 못하죠.(10년 조차도 굉장히 너그러운 기준일겁니다!)

10년 안에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하나 더 나올 수 있을까요?

또, 삼성이 스타트업 하나 인수한다고 매출과 일자리가 드라마틱하게 늘어날까요?

혹은 중견기업이 중소기업 하나 인수했다고 대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요?

중소벤처기업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평균 11년 걸리는 IPO가 TIPS를 거치면 평균 5~6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스타트업이 정해진 시간을 압축해서 빠르게 EXIT에 성공하려면 반대급부로 그만큼 무언가를 희생해야합니다.

과연 스타트업들은 뭘 희생하고 있는 걸까요? IPO까지 걸리는 기간이 줄어드는게 마냥 좋기만 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투자사들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겁니다. 물론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고 창업생태계 조성 그 자체를 중시하는 투자사 대표님들도 계시겠죠.

그러나 펀드의 수익을 포기하고 창업생태계를 가꾸라고 하면 과연 선뜻 하겠다고 손을 드는 분들이 몇 분이나 계실지 의문입니다. 투자사 역시 LP들의 회수 압박을 받기 때문에 공공적, 그리고 장기적 관점을 가지기 쉽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데, 최근 5년을 놓고 스타트업에 관심없는 어르신들 조차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들, 예를 들면 네이버나 카카오, 쿠팡같은 기업들이 얼마나 나왔는지 의문입니다.

1세대 스타트업 이후 저같은 일자무식 조차 알만한 기업이 나왔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각자의 영역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스타트업들은 많겠지만, 정말 우리 사회에 임팩트를 줄만한 기업들이 있나요? 언제 어디서나 심심찮게 이름을 들어볼 수 있는 그런 기업들 말입니다.

수천명의 일자리를 생성하고 수조원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그런 대기업은 어디있을까요?

분명 창업 생태계는 더 발전하고 수준이 올라갔는데 왜 제2의 삼성, 제2의 현대는 탄생하지 않을까요?

스타트업의 본거지 미국에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를 밀어내고 페이스북, 트위터가 등장했고, 지금은 그들을 밀어내고 테슬라, 오픈AI가 탄생했습니다. 그들 모두 거대한 공룡이 되어 막대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생성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카카오가 대기업 반열에 든 이래로 그들을 밀어냈다는 기업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군요.

 

투자는 본질적으로 투입의 영역에 속합니다.

자본이 투입되어 인프라로 전환되어야만 비로소 부가가치가 생산됩니다.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영역은 언제나 투입이 아니라 산출의 영역이었습니다.

투자는 인프라를 빠르게 갖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죠,

사실 높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갖춘 기업이라면 굳이 투자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민간 투자사에 의한 투자는 막대한 자본이 한번에 들어가야할 때 고려해볼만한 한 가지 방법일 뿐이죠.

그리고 공짜도 아닙니다. 투자를 받는 대신에 기업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자원인 지분(주식)을 내줘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매출을 늘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보다 어떻게든 투자를 받으려는 분들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마치 투자가 만능열쇠인 것 처럼요.

그리고 정부 조차 투자를 중심으로 창업생태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사업화 사업에서 창업가에게 매칭되는 멘토들은 죄다 EXIT에 성공한 창업가거나 투자심사역들 뿐입니다.

정작 10년, 20년짜리 기업을 키워나가는 방법을 알려줄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군요.

국가의 입장에서는 다시 재투자될지 안될지 모르는 EXIT보다는 매년 시장을 꾸준히 키워갈 수 있는 견실한 중소기업이 늘어나는게 세수 확보 차원에서나 부의 재분배 측면에서나 더 도움이 될텐데, 왜 굳이 자본주의의 총체인 미국 스타트업 문화를 추종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IT과 재투자가 활성화될 수록 자본 시장과 자본가들의 사정은 좋아지겠지만, 정작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로자의 삶은 그닥 나아지지 않을텐데 말이죠.

월급이 드라마틱하게 늘어나지 않을테고, 스톡옵션이나 성과급이라고 해봐야 전체 부가가치 측면에서는 미미합니다.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사회 전체의 부가 집중되는건 국가의 입장에서는 전혀 긍정적인 방향이 아닙니다.

 

정부의 지원은 오래오래 생존하는 기업을 키워내는데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와 같은 초기기업을 지원하는 사업들은 나쁘지 않은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책이든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습니다. 좀비기업이나 일부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제도 자체를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투자사들이 주장하는대로 기업의 선발과 육성 전반을 그들 손에 맡겨버리면 결국 스타트업 시장은 (그들 기준으로)잘될 기업과 아예 기회조차 얻지 못할 기업으로 양극화될겁니다.

왜냐하면 돈 될만한 기업에게만 투자가 집중될테니까요.

그런데 대부분의 거대한 성공은 관습을 답습하는 것 보다 엉뚱한(될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영역에서 탄생합니다.

그리고 민간 투자사가 그런 로또를 바라고 손해를 감수할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네요.

(열 개 투자할 때 시험삼아 한, 두 개 정도는 가능할까요?)

정부의 시야는 펀드의 만기를 넘어 10년, 20년, 나아가 제2의 삼성, 제2의 현대를 그려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은 분배이지 스케일업이 아닙니다. 당장의 EXIT 성과에 취해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대표님들과 예비창업가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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