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일기장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上)

잠자는보노보노 2023. 6. 1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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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이란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독립을 결심하고 가장 처음 맞닥뜨린 난관은 독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독립해야 할까', '무엇으로 독립할까'에 대한 질문은 끝없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세상은 나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물며 회사조차도 직접 지원하고 면접봤으며 제발로 걸어들어간 곳이었습니다.(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더라도 말이죠)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독립했다고 하면 아마도 스스로 벌어먹고 사는 삶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미 독립했으며, 거창한 독립선언문이 없더라도 이미 홀로(獨) 서있는(立)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독립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고 내 의지로 일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삶. 그러면서 넉넉한 생활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삶.

'무엇으로부터 독립해야할까'에 대한 답은 역시 나의 결정을 옭아매는 상급자, 타인의 시선, 생활비의 압박이었습니다.

특히 생활비의 압박은 그 어떤 제약보다 커보였습니다.

먹고 사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홀몸이 아닌 처자식이 딸린 몸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먹고 살만큼 수입을 확보할 수 있을 지 확신이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어떻게 수입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독립이란 흔히 말하는 '프리랜서'를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기술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벌어먹고 사는 삶. 그것이 독립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면 무슨 프로젝트를 수주할지, 클라이언트와 관계는 어떻게 가져갈지, 어느 수준까지 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물론 클라이언트의 시선이나 요구사항에 대한 압박은 별 차이가 없겠지만요)

 

독립이 프리랜서의 삶을 의미한다고 가정한다면, 이제 '무엇으로 독립할까'에 대한 대답을 할 차례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뼈속까지 문과이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기위한 그 어떠한 스킬도 익힌게 없습니다.

PPT디자인은 감에 의존해서 대충 해치우는 편이고, 프로그래밍은 손도 대보지 않았으며, 영어는 사전을 뒤져가며 겨우 독해를 해내는 수준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전 직장에서 저의 주요 업무는 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의 사업관리였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고작 아래한글 프로그램을 활용한 보고서쓰기, 중급 이하의 엑셀과 PPT작업같은 OA능력 약간, 와이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에 가라앉아도 둥둥 떠다니면서 주인을 살릴 주둥이(언변) 정도였습니다.

그걸로 먹고살기에는 세상이 절대 만만치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저의 한계는 너무나도 명확해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기술을 배우기에는 너무 늦었고, 디자이너나 개발자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임을 알고 있습니다.

몇개월 배워서 쟁쟁한 분들과 무한경쟁하기에는 제 경쟁력이 너무 떨어지는게 현실이었죠.

그 시점에 눈에 들어온게 기업 컨설팅이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약 10년간 공공기관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중소기업 대표님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금에 목말라있었고 그 자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지원사업을 따는 것' 이었습니다.그야 그럴 것이, 은행 대출이나 신용보증은 아무 기업에나 나오는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돈은 언젠가는 갚아야할 '빚' 입니다. 그러나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받은 지원금은 대부분 상환의무가 없는 말그대로 진짜 '지원금'이었으니까요.

 

기업 대표님들이 저를 계속 찾는 이유 대부분은 정부지원사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큽니다. 저 역시 기밀을 지켜야할만한 사안이 아닌 것들은 오픈을 했구요.(주로 사업공고가 언제날지, 지원금 규모는 어느정도인지에 대한 내용이었고, 올해 상반기 안에는 날거다, 지원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수준의 이야기가 오가긴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희안하게도 그런 정부지원사업은 꼭 받아가시는 기업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기업에 지원하기보다는 확실히 성과가 날만한 기업에 지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부지원금 역시 무한한 것은 아니니 최소한의 input으로 최대한의 output을 얻으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긴 합니다만, 공공기관 사정 상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잠시 옆으로 새면, 근래 몇년간 정부지원사업을 두고 성공률이 80%가 넘는다느니, 실패를 용인하기 어려운 문화라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그런데 아마도 진짜 문제는 기업의 실패를 용인하기 어려운 문화가 아니라, 정부를 대신해서 정부지원금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의 실패는 이미 상당 부분 용인되지만(성실실패라는 이상한 이름으로요), 정작 이를 지원하는 공공기관에서는 보고서에 실패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혹시나 이 글을 보는 분 중 정부기관 관계자가 계신다면 한번쯤 참고하시면 어떨까요?

 

어쨌든, 정부지원사업을 따내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한데, 그 사업의 특성과 기관이 원하는 바를 맞춰주면 됩니다.평가위원들이 보는 관점은 대게 비슷비슷합니다. 보통 그런 평가위원회에 참석하시는 위원들의 Pool은 한정되어 있기에, 나오는 질문도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평가위원 별로 자주 묻는 질문 1~2개를 가지고 계시고, 그 질문들에 사업 특성이나 기관의 요구사항(평가전에 보통 언질을 해둡니다)을 어레인지 하셔서 물어보시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그런데, 막상 평가에 임하는 기업 대표님(혹은 이사님)들은 그런 포인트들을 짚지 못하고 계속해서 본인들 기술의 우수함과 본인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설명하는데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매번 탈락할 수밖에요.

 

그런데 바로 그 점에서 제가 먹고 살만한 아이템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정부지원금에 목마른 중소기업은 많지만, 정작 어떻게 사업을 따야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다면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中)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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