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일기장

사업과 용역의 계절

잠자는보노보노 2024. 2. 27.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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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업계획서를 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매년 2~3월은 기관에서 새로운 사업과 용역을 발주하는 시즌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바쁜 시즌이기도 합니다.

저번 글에서 말씀들렸듯이, 저 역시 회사로부터 신사업 발굴의 Role을 부여받아 새로운 사업을 따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산더미같은 분량의 사업계획서(제안서) 작성에 파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보통 사업계획서 1부의 분량은 별첨문서를 다 떼고 순수 내용으로만 30~40장 가량 됩니다.

그리고 사업을 수주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많이 지원하는 것이겠죠. 아무래도 모수가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확률이 올라가니까요.

저 역시 별 뾰족한 수가 없기에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달 남짓한 시간동안 써댄 글의 양만 200장을 넘어가고 있네요.

그래도 저는 기관에서 다른 사람들이 쓴 사업계획서를 꽤나 많이 봐 왔고, 저 스스로도 보고서 형식의 글은 어느정도 쓴다고 자신하고 있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작성하고 있습니다.(어디까지나 '비교적'입니다.)

사실 보고서 작성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설 경우 그때부터는 글의 분량을 늘리는 것 보다 줄이는게 더 어렵습니다.

한장짜리 문서를 딱 두줄로 요약해야할때의 막막함은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렵죠.

사업계획서나 제안서의 경우 100페이지 짜리 연구보고서와 2페이지 짜리 업무보고서의 딱 중간 어딘가에 있는 느낌입니다.

너무 줄여서 써도 성의가 없어보이고, 너무 늘려써도 의미를 전달하기 어려운 포지션입니다.

항상 제안요청서나 사업공고문만 써 왔는데, 실제로 이걸 제가 써보니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네요.

그리고 한가지 더 자아성찰을 하게 됐다면, 긴급공고는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간 편의에 따라 긴급공고를 밥먹듯 올려댔던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며, 매일매일을 새벽 3시가 넘어서 잠드는 밤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사업계획서나 제안서 작업을 밥먹듯 하시는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제안서를 쓰는 것은 퀴즈를 푸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고문 내지 제안요청서를 천천히 뜯어보다보면 담당자의 요구사항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특히 매년 동일한 사업이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경우 전년도 공고문과 비교해보면 미세하게 변경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런걸 보고 있자면 마치 전담기관 담당자가 내는 퀴즈를 푸는 느낌입니다.

저 역시 공고문이나 제안요청서를 쓸 때 알게 모르게 저의 희망사항이 반영되곤 했는데, 주로 연구개발기관(수행사)의 역량과 관련된 사안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유사사업 수행이력을 전에는 3개년치만 요구했는데 이번에는 5개년치를 요구한다던지, 전에는 컨소시엄에 가점을 부여했는데 올해는 오히려 단독 수행을 더 권장한다던지.

또 정부 정책에 따라 내용이 추가되거나 중점적으로 요구하는 바가 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올해 사업들은 하나같이 글로벌 진출로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현 정부의 정책기조가 반영된 바겠지요.

이런 미묘한 변화를 캐치해서 제안서에 녹여넣으며,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제안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상당히 즐겁습니다.

제가 쓴 글로 다른 사람을 설득한다는 점이 즐거움의 포인트 아닐까 싶네요.

 

급한 불은 어느정도 꺼놓은 상황이라 시간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3월까지 사업계획서 검토를 의뢰받은 것이 몇 건 있기에 당분간은 그 부분에 집중을 하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대필은 불법성이 짙기에 70~80% 정도 작성이 된 계획서를 가져와서 문구를 다듬어주고 그림을 좀 추가해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만,

읽다보니 답답한 마음에 교정을 벗어나 뼈대부터 다시 잡는 대공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꽤나 자주 있습니다.

받는 돈보다 공수가 더 들어가는 상황이라 이럴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써주는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컨설팅 같은 지식산업에 제 값을 매기는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공수를 줄임과 동시에 단가를 좀 올리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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