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초기 창업 스토리 : 지금부터 '유료 호흡'을 시작하겠습니다

잠자는보노보노 2024. 5. 1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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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한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아직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당장 해야할 일거리들은 있는 편입니다.

전 직장들에서는 주로 기업을 평가하는 입장이었기에 너무나도 쉽게 했던 말들이, 정작 플레이어가 되어보니 얼마나 무책임한 말들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당장의 수익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우선시해라.", "해야할 일들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잘 매겨야 한다.", "재무계획은 기업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말들이 정작 나의 상황이 되어보니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우선, 미래의 비전을 살피기엔 당장의 주머니 사정이 너무 급합니다.

아직 아무런 수입이 없는데 나갈 돈은 너무 많습니다.

투자사에 있을때 별 생각없이 물어봤던 월 캐시버닝(비용에서 수익을 제한 금액=매월 쓰는 돈)과 런웨이(보유하고 있는 자금/월 캐시버닝=버틸 수 있는 개월수) 개념은 현실에서는 제 목을 시시각각 졸라오는 교수대의 밧줄이었습니다.

 

우선, 지식서비스 업종은 간이과세 배제업종이기에 사무실을 따로 얻어야 했습니다. 애당초 간이과세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집에서 고객을 응대할 순 없는 노릇이죠.

그럼에도 사무실 월세로 매월 30~50만원씩 지출하는 것은 너무 타격이 크기에 급한대로 공유오피스 한 곳을 빌렸습니다.

제 개인 사무실은 없지만 공유공간을 사용할 수 있고 사업자등록도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애당초 고객은 제가 직접 찾아가거나 근처 카페에서 만날 것을 상정하고 월세가 가장 저렴한, 그러면서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내방객을 위해 도심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견적을 받았고, 그 중 시청 앞에 있는 공유오피스를 8개월에 45만원(보증금 별도)으로 임차했습니다. 원래 6개월에 저 비용인데 약간의 협상 끝에 2개월 렌트프리를 얻어냈습니다.

대신 매 주 공유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횟수가 조금 줄었습니다만, 이 부분은 애당초 거기서 일 할 생각이 없어서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월 5만원 이상의 비용이 숨쉬듯 빠져나가게 되었군요.

 

CI와 명함은 대학원 동기 형님 누나들에게 부탁을 좀 드렸습니다. 사업은 인맥빨이라는게 이런 얘기임을 깨달았습니다.

커피 한잔 값에 괜찮은 퀄리티의 CI와 명함을 획득하니 굉장히 이득입니다.

수많은 축하는 덤이구요. CI와 명함을 싼 값에 만들었다는 점 보다 서른명 남짓의 동기들 축하가 더 기꺼웠습니다.

아직은 비루하지만 나중에 꼭 갚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이것도 지인찬스가 없었다면 최소 몇만원~몇십만원은 들었을 것들 입니다.

대학원 동기 누님이 만들어주신 CI. 커피 한잔 값치고 퀄리티가 굉장합니다!

 

제 작업장은 교외의 한적한 곳에 있는 카페를 아지트로 삼았습니다.

2층짜리 큰 카페인데 손님도 많지 않고 프라이빗 와이파이도 설치되어 있는데다 무엇보다 자리마다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양심껏 커피는 사마셔야 하기에(1잔은 의무지만 그보다는 제가 커피가 없으면 일을 못하는 타입입니다.) 앉아있는 동안 커피값만 매일 1만원정도가 나갑니다.

그 돈 쓰지말고 집에서 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의외로 집이란 곳은 일을 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 저 스스로가 나태해질 것 같아서 의무적으로 직장 다닐 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9시 전에 집을 나서고 있습니다.

 

게다가 밥도 먹어야죠. 물가가 올랐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점심 한끼에 뚝배기 불고기라도 한 그릇 먹으려 치면 7~9천원을 내야합니다.

 

아, 세금계산서용 공인인증서는 4,400원 조차 아까워서 세무소에서 세금계산서용 보안카드를 발급받았습니다.

아직은 개인사업자인지라 공인인증서로 해야할 업무가 많지 않아서 보안카드로도 충분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세무소를 방문하면 공짜로 만들어줍니다.

 

그 외에도 프린터 잉크값, 업무에 꼭 필요한 몇몇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값 등등을 다 합치면 매월 못해도 20만원 이상은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개인적인 보험료, 이자, 관리비 등등의 고정비까지 계산하면 암담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장기비전과 재무계획이란 얼마나 의미없는 종이쪼가리인지...

 

어디선가 본 글인데, 자취를 하면 그때부터 유료 호흡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느끼기에 창업 역시 유료 호흡입니다. 심지어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자취에 비해 훨씬 선택지가 적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입니다.

숨 쉴때마다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는데 과연 이걸 다시 채워넣을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우선은 당장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벌어들이는게 1차 목표입니다.

물론 장기적인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당장의 생존을 확보하지 않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제가 월급받으면서 알맹이없이 해온 말들을 이제는 돌려받을 때가 왔군요.

좀 더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 보겠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모아놓은 돈을 털어서 어찌어찌 8개월치의 런웨이는 확보했습니다. 8개월동안 의미있는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빠르게 재취업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료호흡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많습니다.

제가 일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고 컨설팅 의뢰를 해주신 기업 대표님들 만나러 가는 길에 새 소리를 듣는 것도 기쁜 일입니다.

사무실 바깥의 바람은 참 시원하더군요. 에어컨과는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와이프가 부탁하는 일도 시간내서 해줄 수 있다는 점도 기쁨입니다.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일들을 와이프에게 미뤄왔는데, 새삼 미안해지더군요. 겨우 30분 정도 짬을 내면 해줄 수 있는 일들을 이다지도 미뤄왔다니.

 

창업 스토리는 계속 업데이트 해 나갈 생각입니다.

엑셀로 단기 재무계획표를 짰지만 그걸 이렇게 썰로 풀어보니 또다른 재미가 있네요.

올 겨울 장기비전과 재무계획을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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