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실무형 팀장? 대리같은 팀장? - 팀장의 리더십

잠자는보노보노 2023. 9. 29.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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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간 겪었던 팀장들의 리더십에 대해 논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직을 꽤 자주 했던 편이고 이직했던 직장에서도 꽤나 많은 직장 상사를 만나봤던 사람입니다.
공공기관의 순환보직은 보직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닌지라 팀장들도 한 순간에 교체되곤 했는데, 제가 가는 팀은 유독 팀장들이 1년 혹은 그보다 짧은 주기로 바뀌곤 했습니다.
이걸로 한때는 제가 팀장들에게 불운을 몰고오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교체사유도 참 다양한데,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조직개편이 6개월 단위로 연달아 몰아닥치거나, 팀장의 개인 비위로 물러나는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팀장의 사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거쳐간 팀장급들이 지난 10여년간 한 15명 정도는 되지 않나 싶네요.
주변과 비교해봐도 연차에 비해 꽤나 많은 상사를 모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수많은 팀장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일했던 팀장님일 겁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아쉬웠다는 쪽이 더 가까울 것입니다.
시간의 근접성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제가 머리가 좀 굵어지고 난 다음에 만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허와 실이 많이 보였다는게 그 이유일듯 싶습니다.
 
우선 그 분의 리더십 스타일을 보자면, 흔히 이야기하는 실무형 팀장에 가깝습니다.
그 분은 오랜 기간 진급을 하지 못한채 선임급 직장생활을 이어가다가 처음 진급하여 제가 있던 부서로 발령받은 분이었습니다.
실무자로 지낸 기간이 길어서인지 어지간한 보고서는 직접 써내고, 왠만한 업무는 꿰고있는 실정있었습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실무진끼리의 협의 때도 직접 들어오셔서 즉시 의사결정을 이끌어내곤 했습니다.
성격도 꼼꼼하여 완벽주의라는 말이 어울리는 분이었습니다.
인성도 나무랄데가 없어서 온 회사에서 그 분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청원이 끊이질 않았죠.
능력이 좋아서인지 뜬금없는 조직개편의 풍파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시더군요. 드디어 저의 저주가 종말을 맞이하는가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팀장, 언뜻 보면 아쉽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않을 만한 스펙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가장 큰 단점은 다름 아닌 '완벽주의' 였습니다."

 
오늘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실무형 팀장과 대리같은 팀장은 뭐가 다른 걸까요?
저는 그 분과 꽤 긴 시간 호흡을 맞췄습니다. 그 좋은 사람을 상사로 모셨으니 최고의 직장생활을 보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저는 곳곳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상사와 부딪히곤 했습니다.
물론 제 성격의 모남도 있겠지만 유독 그분과는 자주 부딪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곰곰히 돌이켜보면 그 이유 중 절반 이상은 그 분의 완벽주의 때문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 분의 완벽주의는 좀 다른 부분에서 발휘되곤 했습니다.
바로 권한을 전혀 위임하지 않는다는것.
 
그 분은 꽤 자주 밤늦게까지 모든 보고서의 수치와 근거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팀장으로서 업무를 꼼꼼히 확인하는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 대상이 부서에서 생산되는 모든 자료에까지 확대되면 사정이 좀 달라집니다.
일상적으로 1개 부서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자료와 보고의 총량은 과장 좀 보태서 백여개를 가뿐히 넘기기 일쑤입니다.
그 중에는 반드시 팀장이 확인해야 하는 자료도 있지만 실무자 선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자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반드시 모든 자료를 직접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습니다.
당연히 의사결정과 결재는 항상 늦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당장 결재해야만 하는 급한 건마저 산더미 같은 검토건에 묻혀 몇 시간째 소식이 없곤 했습니다.
더 심각한 경우는 팀장이 출장이나 휴가를 갔을 경우입니다. 보통은 최선임자에게 결재권을 맡겨놓기 마련이지만 그 분은 팀장을 맡은지 1년이 지날때까지는 휴가 중에도 원격접속을 통해 직접 결재를 하곤 했습니다.
출장의 경우는 더 심각한데, 보통 부처의 고위급 인사와 함께 회의를 들어갈 경우 몇시간째 소식두절과 급한 결재건이 겹쳐서 몇몇 직원들이 입에 거품을 물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분의 꼼꼼함에 감탄했던 사람들도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니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실무형 팀장이 대리같은 팀장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리같은 팀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등병을 양산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 분의 가장 큰 실책은 결재가 늦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부처의 주무관들과도 직접 협의를 하곤 했습니다. 때로는 현장에서 즉시 의사결정이 되기 때문에 효율적인 면도 있었지만, 몇개월이 지나자 즉시 부작용이 생겨났습니다.
우선, 부처의 주무관들이 실무자와 대화하기를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팀장과 직접 협의하면 바로바로 결론이 나는데 굳이 실무자와 대화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거기다 주무관과 팀장이 협의해서 결정한 사항을 그보다 하위직급인 실무자가 마음대로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 결과 실무자가 재량껏 할 수 있는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실무자는 팀장의 지시만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는 업무의 방향이 자주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부처의 주무관들도 그 위에 사무관, 과장, 국장, 실장, 심지어 차관이나 장관의 걸재를 거쳐야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부처에서는 통상적으로 최소조직단위를 'ㅇㅇ과' 라고 하기 때문에 과장은 민간 기업의 팀장 또는 부장과 같은 위치입니다.)
그런데 주무관과 팀장이 합의한 업무가 그 위의 사무관, 과장급에서 틀어지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앞선 이유 때문에 사무관들조차 팀장과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주무관을 시키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가뜩이나 바쁜 사무관 입장에서 굳이 산하기관 실무자와 아웅다웅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1차적인 필터링을 주무관에게 맡겨버린 것입니다.
사무관과 실무자가 직접 소통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실무자들은 사무관 또는 과장선에서 업무가 틀어지는 경우를 몇 번 접하고는 그 다음부터 팀장의 지시에 바로 반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꽤 자주 야근을 하곤 했습니다. 매일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두 세시간 자고 다시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점점 야위어가는 몸과 별개로 일은 점점 더 쌓이기만 하고 정작 직원들은 야근은 커녕 자신들이 당연히 해야할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어차피 팀장이 직접 할테니까요.
일하기 싫어하는 몇몇 프리라이더들은 팀장이 보고서까지 대신 써주니 더더욱 편해졌다고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가끔은 제가 써야할 보고서까지 대신 쓰셔서 역으로 저에게 컨펌을 받으려 하시기에 기함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제가 속해있던 부서는 천국으로 소문이 나고 회사 모든 직원들의 워너비가 되었지만 정작 팀장과 팀원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과연 좋은 팀장이었을까요?"

 
실무자의 활동범위는 팀장의 활동범위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그 분은 자신이 스스로 실무자의 위치까지 내려옴으로서 실무자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최소화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실무자들에게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함으로서 직원들의 성장 가능성마저 꺽어놓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팀장을 맡은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더는 버티지 못한 팀장이 일정부분 권한을 위임함으로서 결재가 늦어지는 것은 어떻게 막아내었지만...조직원들이 예전처럼 능동적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그 분과 2년이 조금 넘게 일하다가 퇴직했고, 그 사이 혹은 그 이후로도 수많은 주니어들이 퇴직했습니다. 회사에서 가장 근무하기 좋은 부서이지만 역설적으로 퇴사율이 가장 높은 부서이기도 하더군요.
 
지금도 가끔 근황을 확인합니다만, 그 분은 여전히 카운터파트너로 상대 기관의 실무자급을 선호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 하고 있는 업무를 쳐내기 급급해보였습니다.
제가 퇴직한 직후 조직개편의 폭풍이 몰아닥쳐 팀의  규모가 절반으로 줄었더군요. 업무도 다른 팀으로 많이 분산되었습니다.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실무자가 답답하고 믿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하급자들과 일을 하다보면 '그냥 내가 하고 말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상급자가 자신의 급을 낮춰서 카운터파트너의 하위직급과 얘기를 하는 순간, 실무자들의 역할은 그저 팀장을 대신해 글쓰는 기계, 인쇄하는 사람, 커피타는 심부름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어쩌면 사회에서 급을 나누고 이를 엄격하게 따지는게 어떤 면에서는 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실무형 팀장과 대리같은 팀장을 나누는 기준.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급을 잘 파악하고 그 선을 지키고 있느냐로 판가름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실무형 팀장'인가요? '대리같은 팀장'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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